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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실 제게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회의는 지난 4년 동안 갈망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젊은 과학자, 즉 like-minded people과 함께하는 일주일은 그들의 지성과 생각의 깊이에 경탄했던 지난 일주일은 무엇보다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만물의 이해에 무엇보다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겸손함과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open-mind가 만나는 장은 배움의 즐거움을 흠뻑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 그리고 young scientist들이 보여준 연구에 대한 열정과, 과학 이야기만 나오면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저 또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은 제게 한목소리로 “자신이 좋아하는, 즐거워하는 연구를 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비교에 때로는 산만해지기도 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우직하게 연구자의 길을 걸어나가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지난 일주일간 누렸던 만남들과 그로부터 얻은 지식과 경험은, 결코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젊은 과학도에게 베풀어준 배움의 기회와 관용의 소산임을 상기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그랬듯, 저 또한 좋은 연구자로 성장하여 후배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간 노벨상 수상자들만큼이나 young scientist들과의 교류도 무척 inspirational 했습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무척 즐거웠고, 그 과정에서 과학자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게하면서 다시 한 번 과학에 대한 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지난 일주일은 제가 꿈꾸던 지성인들과 함께하며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일차 (6/30)

린다우 회의의 거의 모든 일정은 Inselhalle라는 컨벤션 센터에서 이루어집니다. Inselhalle에서 등록을 마치면 이름표, 시간표, (사전 신청한 프로그램에 대한) 입장권, 그리고 명함이 주어집니다. 첫 날 일정은 개회식, 리셉션, Young Scientists’ Dinner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main hall에서 진행되었습니다. Main hall의 좌석 중 앞 열들은 모두 귀빈, 언론, 노벨상 수상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초청된 young scientist들은 모두 앞에서 10번째 열부터 앉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일찍 입장하여 앞 열에 앉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young scientist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좌) 린다우 회의 개회식장에서. (중) 이름표. (우) Theodor Hansch 교수님의 사인을 받았다.

조직위원장님께서 매 순간마다 (1) 린다우 회의는 노벨상 수상자들 뿐만 아니라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장이라는 것, (2) 그리고 린다우 회의는 늘 음악과 함께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올해도 빈 오케스트라에서 개회식 중간에 음악을 연주해주셨습니다. 이후 리셉션과 만찬에서는 다른 나라의 young scientist들과 안면을 트고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이번 73회의 경우 지난 70회 회의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던 참가자들이 다시 초청을 받아 오신 경우가 많았는데, 4년이 지난 현재는 박사후연구원에서 조교수로 임용되신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조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과학자들을 만나며 social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2일차 (7/1)

2일차부터 본격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lecture, agora talk, 그리고 open exchange들이 이어졌습니다. 35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이는 만큼 프로그램이 무척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재료과학을 전공하는 저로서는 특히 Konstantin S. Novoselov 교수님의 강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Lecture의 경우에는 상당히 introductory한 감이 있었고, 디테일한 이야기는 agora talk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Agora talk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소개한 후 young scientist들이 질문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대체로 미래 연구 방향이나 자신의 진로에 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이후 Novoselov 교수님과의 open exchange에 참여했는데, 저는 ‘혹시 교수님의 연구 비전은 무엇인지, 그리고 노벨상 수상이 비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질문했는데, 교수님께서 당신께서는 단 한 번도 과학자로서의 비전을 가져본 적이 없으시다고, 그냥 당신을 이끌었던 주제들을 (things that intrigued me) 따라가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고 하셨습니다.

(좌) Novoselov 교수님의 Materials for the Future 강의 (중) Open exchange가 끝나고 Novoselov 교수님과 함께. (우) Open exchange가 끝나고 Klitzing 교수님과 함께. 교수님께서 가져오신 노벨상 메달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반드시 충분한 숙의 후에 실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연에 의한 발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어떤 실험결과가 나오게 될지, 그것이 이전 실험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지, 또 그 실험이 대체가설들을 충분히 기각시킬 수 있는지를 모두 생각한 뒤 실험을 진행하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거라고 하셨던 말씀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Novoselov 교수님께서는 다음 일정으로 인해 조금 이르게 open exchange session을 떠나셔서, 이후 Klitzing 교수님께 이동해 open exchange를 들었습니다. 분야가 분야인 만큼 국제표준과 Klitzing constant에 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Novoselov, Klitzing 교수님의 open exchange는 Inselhalle가 아닌 Hotel Bayer. Hof.에서 진행되었으므로 다음 일정인 Internation Evening 행사에는 조금 늦었습니다. Texas A&M University (TAMU)에서 지원하는 행사인 만큼, 모든 참석자들이 텍사스 카우보이들이 쓰고 다닐 법한 밀짚모자를 하나씩 받았고, 무대에서는 TAMU 학생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3일차 (7/2)

아침에는 일전에 신청해두었던 MARS 주관 복잡계 물리 조찬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간단한 조찬 시간동안 다른 young scientist들과 social 후 1시간 반 동안의 패널 토론을 들었습니다. 오전동안 이어진 lecture들과 agora talk들에서는 생화학 분야를 주로 들었습니다. 특히 단백질 구조 분석을 위한 X-ray crystallography, high-resolution electron microscopy, 그리고 nuclear magnetic resonance를 개발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습니다. 특히 Henderson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전자현미경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좌) Mars Partner Breakfast 조찬토론에서. (중) Richard Henderson 교수님의 강연. (우) Hansch 교수님과 함께한 점심.

이후 frequency comb의 개발자 중 한 분인 Theodor Hansch 교수님과의 점심식사를 위해 콘스탄츠 호수가 보이는 이태리식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교수님을 보좌해주시는 비서분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비서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Hansch 교수님께서는 무척이나 겸손하고 인품이 좋으셨습니다. 교수님께 연구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교수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여쭤보았는데, 당신께서는 그것을 도리어 즐거움으로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점심 이후 양자기술에 대한 panel discussion을 듣고, Henderson 교수님과의 open exchange에 참여하였습니다. 석식으로는 린다우 섬 너머 공원에서 Grill and Chill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비가 와서 모두가 천막 안에 모여 식사하느라고 약간 복잡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다른 young scientist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4일차 (7/3)

오전을 가득 채운 lecture와 agora talk을 지나, chirped pulse amplification을 개발하신 Donna Strickland 교수님과의 open exchange에 참여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무척 유쾌하셔서 인기가 좋았는데, 조금만 늦어도 입구에서 담당 직원분이 입장을 막으실 정도였습니다. (입장 시작 5분만에 이미 방이 꽉 차고, 서서 듣는 사람도 많은 상태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정부-연구기관-산업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협력하는지 잘 이해하고 이용하는 국가”하고 하시며, 한국의 과학정책을 높게 평가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2020년 Stockholm International Youth Science Seminar (SIYSS)에서 Strickland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서, open exchange 끝나고 찾아뵈어 인사드렸는데, 한국 학생이라는 점에서 한 번, SIYSS 참가자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반가워하셨습니다. 이후 Scientific exchange among young scientists 행사가 있었습니다. 주제에 따라 두 개의 세션으로 나뉘었는데, 저는 Stadttheater에서 열리는 session에 참여했는데, Dipa Ghindani 박사님의 발표에서 제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이후 co-work를 위해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하였습니다. 또한 제 분야는 아니지만 양자 분야에서 많은 발표들을 무척 흥미롭게 들었고, 끝나고도 discussion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Donna Strickland 교수님과 함께. (좌) 2020년 Stockholm International Youth Science Seminar에서. (중) 2024년 Lindau Nobel Laureate Meeting에서 Open exchange를 마치고. (우) Bavarian Evening에서 Strickland 교수님의 옆자리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5일차 (7/4)

오전에는 W. E. Moerner 교수님의 agora talk에 참여했습니다. 현재도 활발히 연구하고 계시는 교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생과 함께 연구의 비전을 소개해주셨었는데,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오후의 open exchange에서는 William D. Phillips 교수님 session에 참여하였는데, Haldane 교수님께서도 중간에 들어오셔서 학생들 질문을 받아주셨습니다. 그 덕에 토론 형태가 되어 더욱 뜨겁게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사전 신청자에 한하여 참가하는 워크샵이 2개 준비되어 있었으나, 추첨에서 탈락하여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은 바이에른 주 전통 춤, 음식과 함께하는 Bavarian evening이 열렸습니다. 각 테이블마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배석하고, young scientist들과 함게 만찬을 즐기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테이블이 길어 늦게 앉는 경우 노벨상 수상자와 멀리 떨어져 식사할 수 있으므로, 재빨리 입장해야 합니다. 저는 운 좋게도 Donna Strickland 교수님 옆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기초과학연구원(IBS) 남창희 교수님과의 친분이 있으셔서 한국 연구자들을 주제로 꽤 재미있게 대화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노벨상 수상자 전기의 각 페이지에 노벨상 수상자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Strickland 교수님께서 책에 실린 2018년도 당시 사진을 보시고서는 “이때 나 너무 young 하지 않니?” 하시길래 “지금이랑 구분을 못하겠는데요”하고 말씀드리니 무척 좋아하시며 안아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아주 유쾌하신 분이라 좋은 분위기로 식사를 마무리했습니다.

6일차 (7/5)

마지막 날 일정은 마이나우 섬으로의 크루즈 여행이었습니다. 약 2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콘스탄츠 호수 반대편의 마이나우 섬에 young scientist와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두 크루즈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크루즈에서 우연히 현재 IBS에서 박사과정 하는 일본인 친구와, IBS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올 예정인 독일인 친구를 만나 신나게 social했습니다. 이후 섬에서 AI 신뢰성 관련 패널 토론을 마친 후 돗자리를 펴고 다같이 점심을 먹고, 섬을 더 둘러봤습니다. 여기서도 다른 친구들을 만나며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나비공원에서 마침 저와 같은 광전소재 분야의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생경한 만남이 연구로 엮이는 것, 그것이 린다우 회의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돌아오는 배에서는 선상 파티가 열렸는데, 학생들이 어우러져 모두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이 함께할 때면 분위기가 달궈지기도 했습니다. 린다우 항에 돌아온 후, 노벨상 수상자들이 가장 먼저 하선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관례에 따라 young scientist들은 배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환송했습니다.

(좌) Mainau 섬 가는 크루즈에서. (중) Mainau 섬에서 동료와. (우) 선상 파티에서 일주일 간 친해진 연구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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